언해피서킷
한국
〈인류를 위한 얼어붙은 기념비〉, .
냉장고는 인류 문명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인류는 냉장고를 통해 매일 신선한 고기를 어렵지 않게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든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이 고기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이제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져, 우리는 그 고기가 한때 살아 있는 생물이었다는 사실마저 쉽게 망각하고 만다.
이 작품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전 기기이자 인류 문명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냉장고를 ‘인류 문명을 기리는 얼어붙은 기념비’로 새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차가운 비석 안에는 살아 있는 가축들이 빼곡히 차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의 냉장고를 가득 채운 이 고기가 사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애써 그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모르는 체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가 외면하는 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우리 문명을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인류 문명의 풍요로움은 이제 인류를 겨누는 화살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현재 우리 일상에서 겪는 이 재앙은 생명과 자연에 대해 이기적일 만큼 무관심했던 우리의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