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영
〈에메랄드 빛의 숲〉, 2021.
설치를 위한 드로잉, 혼합 매체, 혼합 재료, 조명,가변 크기, ACC 커미션
고기영은 3차원의 공간에 4차원의 빛을 사용하여 시간의 공간 작업을 하는 조명 디자이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공간 및 환경 디자인을 전공한 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건축 조명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스퀘어, 경복궁, 창덕궁,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부산 오페라하우스,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화성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쿠웨이트 코즈웨이 교량 조명을 비롯하여, 2012 여수 엑스포,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강릉 경관 설치 등 다수의 작품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전시 《클럽 몬스터》(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6–2017), 《내 마음 속 서재》(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 2016), 그리고 공공 미술 프로젝트 <달빛노들>(노들섬, 서울, 2021) 등에 참여했다. 또 양양 설해원의 포이어(foyer) 공간에서는 ‘빛의 호수’라는 주제로 영상과 조명을 통한 묵상의 공간을
완성하였으며, 빛을 기반으로 공간의 확장성을 이어 가는 작업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에메랄드 빛의 숲>
쩌면 한낮의 풍경은 신기루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빛이 없으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을 구축하는 건축이 자연을 바탕으로 모여 만든 일상의 풍경에 빛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밤이 내리면 공간은 또 다른 장소가 된다. 역사적 기억이 없는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다고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말한다. 문화적 풍경과 함께하는 과거는 인간의 자유를 고양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이다.
수많은 기억들이 어둠 속 정적에 묻혀 사라질 즈음 신화 속 초록빛 꿈이 있는 에메랄드 빛의 숲속을 거닐고 싶었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과 함께 코로나의 두려운 함성을 보내고 사라진 풍경 속에 새로운 이야기로 행복한 또 다른 자유를 꿈꾸고 싶었다.
어둠이 내리고 빛이 오르면 차갑고 온기 없는 냉각 타워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빛의 결을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성의 형태는 빛으로 신나는 연주를 하며 세상을 향해 노래를 시작한다. 행복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향해 춤추기 시작하면서 무미건조했던 타워는 순식간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어 맑은 입자의 공기 순환을 표현하는 생명의 진원지가 된다.
계단에 뿌려지는 초록의 빛들은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환상의 숲속으로 흐르며 신선한 자유를 만끽하게 해 주는데, 부유하는 빛의 입자의 흐름은 그랜드 캐노피의 하부까지 전달되어 감각정원과 통일된 주체의 조명으로 공간 전체에 대한 연계성과 입구의 인지성을 강조한다.
나무 계단을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은 어느새 초록이 짙어져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만 밤이 내리면 허공 속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고 만다. 초록의 빛은 숲속의 나무들에게 밤 풍경에 맞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초록이 가진 평화, 편안함, 자연, 조화 등의 이미지로 우리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며, 조용조용 지나간 기억과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준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가장 신비로운 에메랄드 빛으로 아프고 힘든 오늘의 코로나 현실을 보듬고 치유해 주는 것이다.
2021년 어느 가을, 밤이 내리면 빛이 오르고, 이곳은 새로운 자유를 찾아 상처 의 기억들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의 장소가 될 것이다.